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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쿠로켄/섹피AU]개새끼(7)

해융 2017. 1. 27. 20:33

*(매우매우매우)불규칙한 연재로 인한 알림(겸, 뻘소리) 트위터 @0haeyung0

 

눈을 떴을 때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문가에 놓인 짐가방도 방의 가구, 침대, 어제 입었던 옷까지.. 변한 것이라곤 시트가 갈아져 있고, 분명 문 앞에서 쓰러져 있던 몸이 누가 옮겼는지 침대까지 와있다는 점. 꿈이라고 거짓을 진실인 마냥 포장하려 해도 눈가를 비추는 햇빛의 감각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적만이 흐르는 가운데에도 바람은 부는지 열려있는 창가에 달린 커튼이 흔들린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햇빛에 데워진 바람은 눈물 나리만큼 따뜻했고, 눈부신 햇살은 비참하리만큼 찬란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대 옆에 달린 조그만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닫지 않는다. 의자에 올라가 섰는데도 창문에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커튼은 여전히 흔들렸고, 햇빛도 따뜻했다. 포근했다. 그곳으로 가고 싶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무도 없는 그곳으로.....

 

그래, 그곳으로 날 데려가 줘.

 

발을 한 발짝 떼자 의자가 흔들거리며 쓰러졌고 축 처진 몸뚱어리는 바닥을 굴렀다. 바닥에 몸을 기대고 죽은 듯이 눈을 감았다. 의식은 점점 흐려져 어둠속으로 켄마를 이끌었고, 켄마는 단 한 번의 저항도 없이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단편적인 영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그날은 켄마의 생일이었다. 10월 답지 않게 날이 따뜻했고, 포근했다. 정원 가득 만개한 코스모스들이 지금이 가을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거실에서 홀로 먼지에 뒤덮여 있던 흰색 피아노가 청아한 소리를 내며 켄마의 단잠을 깨웠다. 한 번도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듯 피아노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엄마의 희고 가는 손가락이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제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화음을 맞췄다. 엄마는 바닥에 누워 넋이 나간 켄마를 들어 올려 의자에 올려 주었다. 발이 닿지 않은 의자에 올라온 켄마는 두려움에 엄마의 허리가 유일한 구명줄이 된 듯 품에 파고 들었다. 꺄르르 웃는 목소리가 피아노의 선율과 공명해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오늘 사용할 카메라의 필름을 확인하며 모자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한참을 엄마를 안고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있었을 때 딩동 거리는 초인종 소리가 났다.

 

케이크 왔나 보다.”

 

배달시킨 케이크가 왔다는 소리에 켄마는 엄마 품에서 벗어나 쪼르르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고개를 꺾어 위를 보자. 낯선 남자가 흰색 상자를 들고 서있었다. 이상하리 만큼 큰 상자 크기에 놀란 켄마는 주춤 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 그렇게 큰 건 못 드는데..”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는 몸을 숙여 켄마와 눈을 맞췄다.

 

그럼 아저씨가 들어줄게.”

 

진짜요? 감사합니다!”

 

꾸물거리던 켄마는 기쁨에 아저씨의 옷을 잡고 집안으로 끌어당겼다. 거실 문을 여는 순간 켄마는 발이 닿지 않는 것 같은 착각에 몸을 비틀었다. 따끔하고 목에 뭔가 차가운 게 닿았다. 몸을 뒤척일수록 아픔이 커졌다. 아저씨는 켄마의 머리채를 잡아 오른쪽으로 잡아당겼다.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아빠는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트린 채 이곳을 보고 있었다. 모든 게 이상했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나야 할 법한 일이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12살의 어린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강도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목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칼은 차가웠고, 아팠다. 어제 종이에 손을 베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아픔이었다.

 

움직이지 마. 일단 통장, 현금, 귀금속같이 값이 나가는 건 다 이 가방에 담아.”

 

턱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옆에 매고 있던 가방을 거실 한가운데로 던졌다. 엄마는 덜덜 떨며 울고 있었고, 아빠는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조심스럽게 뒤에 있는 골프채를 잡기 위해 움직이던 아빠는 켄마의 목에 칼을 더 깊이 박는 남자의 태도에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피부에만 살짝 닿고 있는 칼은 단숨에 목을 찌를 기세로 얇은 피부를 베어냈다. 줄줄 흐리는 새빨간 피가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알려줬다. 엄마의 곱게 한 화장이 눈물로 인해 흘러내렸고 떨리는 손으로 끼고 있던 반지와 목걸이, 귀걸이를 빼내 가방에 담았다. 아빠는 어디선가 가져온 통장과, 도장, 지갑을 가방에 넣었고, 엄마는 안방에서 가져온 보석함을 가방에 넣었다. 꽤나 배를 채운 가방을 강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들고 있던 켄마를 바닥에 내려놓고 칼날을 세웠다.

 

가방 이쪽으로 밀어. 허튼수작 부리면 네년 애새끼 목을 바닥에 떨어트려주지.”

 

아빠가 가방을 강도 쪽으로 밀자 남자는 켄마를 집어던졌다. 거실 구석으로 꼬꾸라진 켄마는 두려움에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엄마 쪽으로 기어갔다. 그 순간 켄마의 눈에는 강도가 들고 있는 작은 금속 물체가 들어왔다. 그 금속 물체는 작년 생일에 선물 받은 모형 총과 같은 모양이었으나 모형 총에 비해 무거워 보였고, 탁해 보였다. 골프채를 잡고 뛰어오던 아빠를 향해, 덜덜 떨며 기어 온 켄마를 감싸는 엄마를 향해.

 

,

 

단 두 번의 유쾌하지 못한 총소리에 엄마와 아빠는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상황 판단이 덜된 켄마는 자신을 안던 엄마의 팔을 붙잡고 울었다. 마주친 강도의 매서운 눈매 때문에 속으로 소리를 삼키고 울던 켄마의 머리채를 강도가 끌어올렸다. 광기에 휩싸인 눈에 두려움을 느낀 켄마의 입에서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최면을 걸 듯 강도는 켄마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와 눈을 맞췄다.

“5? 아니면 10분 안에 경찰이 올거야. 내가 신고할 거거든. 그럼 경찰 아저씨들이 너한테 뭔가를 물어볼 거야. 여기에 왔던 사람은 누구인지, 네가 뭘 봤는지. 그런 걸 물어볼 거야. 그럼 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왔는지, 누가 죽었는지까지 전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해. 안 그러면...”

 

강도는 켄마의 머리를 끌어 옆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엄마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뜨거운 피를 내뿜으며 경련하고 있는 엄마의 목 정중앙에 칼을 꽂았다. 바들바들 떨며 발작하던 엄마는 고개를 꺾었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죽음이었다.

 

내가 널 이렇게 만들어 버릴 거야. 네년 애미처럼.”

 

 

.

 

 

아저씨한테만 말해줘. 저기 중에 어떤 사람이 범인인 거 같아?”

 

검은색 코팅이 되어 있는 유리 뒤로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유리에 코팅이 되어 있어서 안 보일 게 분명했는데 남자는 켄마의 눈을 정확하게 쳐다보고 히죽 한번 웃고는 고개를 돌렸다. 짧은 순간이라 경찰은 못 봤겠지만 처음부터 사내를 바라보고 있던 켄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때 저 사람이 한말은 사실이라는걸. 답답하다는 듯이 재촉하며 켄마에게 묻는 형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벌어지려는 입을 악물었다. 말하면 분명 죽으리라. 엄마처럼 죽게 되리라.

 

조개처럼 다물어진 입은 벌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켄마가 입을 열지 않자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유력 용의자 2명을 추려냈지만 목격자 진술이 없었던 탓에 사건은 미제로 종결되었고, 켄마는 오사카 친척 집에 맡겨졌다. 밤만 되면 그 남자가 찾아오는 꿈을 꿨다. 발작을 일으키며 몸을 떨었고,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남자의 그림자는 켄마의 침실로 파고들어 이불 속에 파묻힌 켄마의 목을 죄었다. 불을 켜면 그 남자가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아버릴 거라는 두려움에 밤에는 절대 불을 켜지 않았다. 바람에 창문이 흔들리는 소리에도, 밤늦게 돌아다니는 사촌의 작은 발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흠칫흠칫 놀랐다. 베개로 머리를 누르고 이불안에 몸을 숨겼다. 그 남자가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정신과 치료와 안정적인 삶에 켄마의 발작과 불면증, 두려움은 점점 줄어들었다. 일반 사람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은 잘 수 있게 되었고,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홈스쿨링을 그만하고 처음 학교에 가기 위해서 교복을 받았을 때는 두려움에 잠을 못 이루는 게 아니라 설렘에 잠을 못 이뤘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던 도중 사촌의 강간이 있었고, 집에서 쫓겨났다. 든든하게 언제나 자신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두 번째 울타리가 허물어져버렸다. 두 번째 의지했던 울타리가 허물어지자 첫 번째보다 더 큰 허무감과 상심감이 켄마를 뒤덮어 발작은 잦아들었지만 두려움과 피해 망상증은 더 심해졌다. 도쿄에 올라와서는 피해 망상증이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았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다 나를 쳐다보며 혀를 찼고, 종종 길가의 사람들의 얼굴이 그 남자로 보일 때도 있었다. 미쳐버릴 거 같았다. 아니 반쯤 미쳤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최근 1년 동안 찾아오지 않던 발작이 갑자기 일어났다. 길거리에 갑자기 쓰러진 켄마를 발견한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 남자였다. 어느새 두 명이 되어버린 그 남자가 다가와 손을 뻗었다. 피로 물들어 붉은색을 띠는 그 남자의 손을 쳐내고 덜덜 떨며 발작하는 몸으로 기어서 도망쳤다. 옷은 엉망이 되어 찢어졌고 쓸린 살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작게 나있는 골목의 벽에 기대 떨리는 몸이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너 거기서 뭐 하니?”

 

무릎에 처박은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남자였다. 도망가야 하는데 뒤에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남자로 인해 도망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은 순간. 짝하는 소리와 함께 뺨에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충격에 몸의 떨림이 멈추고 큰 손에 턱이 잡혀 고개가 꺾였다. 그 남자는 사라지고 빨간 립스틱을 천박하게 바른 여자가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른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뭐 하냐고.”

 

그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다.

 

 

 

+

 

사실 모브의 분량이 커질줄은 알았지만 그놈, 놈, 새끼라고 부르니까 미안하네요.. 모브를 누구로 해야할까요?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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