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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켄]

[쿠로켄/섹피AU]개새끼(4)

해융 2016. 9. 18. 17:15

첫 만남부터 이상했지만 그렇게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오히려 우호적인 관계였다. 쿠로는 켄마에게 관심과 호감은 있었지만 켄마를 둘러싼 소문을 몰랐고 알려 하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켄마를 편견 없이 봐준 유일한 사람이 쿠로였다. 켄마도 그런 쿠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처음으로 연애라는 걸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화는 휴대폰으로, 쿠로와 만나는 건 도시 외곽의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혹은 켄마의 집에서, 학교에서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학교에서 만나더라도 일이 있다며 피하던가 쿠로의 목소리만 들려도 자리를 피했다. 원래 급식실을 사용하지 않고 매점을 사용하는 편이었지만 나가서 마주치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하에 점심시간에는 점심도 먹지 않고 교실 안에 틀어박혀 그동안 나눴던 문자들을 곱씹었다.

 

문자를 곱씹을 때마다 보낸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상한 기분이 좋았고 마음 한편의 간질거리는 느낌도 좋았다. 새싹이 나려는 듯 간질간질한 기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읽었던 글자를 또다시 읽었다. 학교에서와 밖에서 몸을 파는 건 그만뒀다.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 몸을 파는 건 쿠로가 모른다고 할지라도 애인이 있는 지금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다. 무엇보다도 쿠로 앞에서 조금이라도 떳떳해지고 싶었다. 언젠가 사실대로 모든 걸 밝힐 때 아주 조금의 면죄부라도 받기 위해서는 이런 생활은 청산하는 게 맞았다.

 

그날도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쿠로와의 문자를 다시 보며 간질거리는 느낌을 느끼고 있었다. 기 분좋은 바람, 기분 좋은 느낌, 그리고 비릿한 우유 냄새. 머리를 타고 얼굴로 흐르는 희멀건 우유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기분을 망쳤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일주일 전에 사귀자던 고백을 거절했던 같은 반 배구부 주장이었다.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녀석이었다. 한껏 내려간 눈꼬리와 강아지처럼 둥근 순한 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켄마가 일어나자 들고 있던 수건을 닦으라며 머리 위에 올려주는 태도에 열이 오른다. 진심으로 미안하다는듯한 표정에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이 나왔다.

 

손이 미끄러져서. 미안. 이걸로 닦아.”

 

실수라며 사과하는 얼굴에는 미안함 따위는 담겨있지 않았다. 명백한 고의.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데에 대한 해코지였다. 소문에는 꽤 나가는 집안의 자제라는데 거절당한 게 제 딴에는 충격이었는지 저번부터 유치한 장난을 하곤 했다. 책을 찢어놓는다거나,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숨 켰다가 끝나고 돌려주거나, 바뀐 시간표를 전달받지 못하게 막는다거나.. 근데 이번 건 장난이라고 넘어가기는 힘들었다. 열이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소란을 일으켜서 소문을 키울 필요는 없다.

 

머리 위에 올라와 있는 녀석의 수건으로 아직도 흐르는 우유를 대충 닦아 녀석에게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사물함에서 체육복과 수건을 챙겨 수군거리며 동요하는 반을 뒤로한 채 샤워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샤워실은 텅 비어있었다.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물을 틀었다. 말라버린 우유가 씻겨 내려왔고 비릿한 냄새가 희미해져간다. 머리에 남은 역겨운 우유의 잔향을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치되어있는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거품도 잘 나지 않았고 머리카락도 뻣뻣했다. 물기를 닦고 체육복을 걸친 다음 교복을 대충 챙겨 나가려 했지만 순간 손에 힘이 빠져 교복을 떨어뜨렸다. 교복은 기름종이라도 된 양 빠르게 바닥의 물기를 흡수했다. 물에 젖어 축축해진 교복을 주워 물기 어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고 샤워실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다. 시작종이 친 모양이다. 지금 들어가면 꼴이 우스워 질듯싶어 그냥 양호실로 향했다. 아픈 데는 딱히 없었지만 합법적으로 쉬기에는 양호실이 좋았다. 양호실에 들어가 보건교사에게 확인증을 끊고 침대에 누웠다. 먼저 한 명이 누워있는 듯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 침대의 이불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처럼 배가 불러있었다. 보건교사는 출장이 있다며 조용히 쉬다가라는 말과 함께 양호실문을 닫았다. 커튼을 닫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커튼 때문에 잠에서 깬 건지 이불이 걷어지고 얼굴이 드러났다. 오늘은 되는 일이 없는 날인가 보다.

 

침대에 누워있는 인간의 얼굴을 알아보고 안면 근육이 굳어짐이 느꼈고 커튼을 치던 손에 힘을 실어 빠르게 커튼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켄마를 잡아당기지만 안았어도. 엉성하게 침대에 깔린 꼴이 된 켄마는 자신을 깔고 있는 남자를 쏘아봤다.

 

뭐 하자는 건데?”

 

씻고 왔나 봐. 비누로 감았어? 뻣뻣하네.”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체육복 위로 허리 부분을 지분거린다.

 

난 여우 새끼한테는 몸 안 팔아.”

 

난 몸 팔라고 안 했어. 사귀자고 한 거지. 그리고 여우가 아니라 늑대야. 그렇게 숨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냄새를 잘 못 맡나 봐?”

 

남자는 켄마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선조 귀환들은 다 이런 냄새가 나나? 엄청나게 야한 냄새가 진동을 해. 그리고 맛있는 냄새도.”

 

지랄. 늑대 새끼답게 냄새 타령하는 녀석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순순히 떨어져 주는 남자는 켄마의 발에서 슬리퍼를 벗겨 열려있는 창문 밖으로 던졌다. 또 무슨 유치한 짓인가 싶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화도 안 난다.

 

내가 너 건드는 거 짜증나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그럼 나랑 한 번만 자자. 진짜 딱 한 번만 자면 너한테 미련도 안 남을 거 같은데. 나 되게 잘 질려.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번 자면 더 이상 너 안 건드릴게. 저번에 체육관에 네가 왔을 때 난 코치랑 얘기하느라 못했단 말이야.”

 

딱 한 번만 하게 해주면 안 괴롭힐게.

 

되먹지도 못한 말을 내뱉으며 부탁하는 남자의 얼굴은 우습게도 진지했다. 체육복 상의를 위로 올리며 배를 쓸어올리는 손길을 불쾌했다. 더 위로 올라와 가슴을 지분거리는 손을 쳐내고 욕을 퍼부으며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슬리퍼가 없어 새하얗던 양말은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1층으로 내려가 신발장을 열었으나 텅 비어있었다. 분명 아침에 넣어둔 신발이 안 보이자 신발장을 잘못 열었나 싶어 앞에 걸린 이름을 확인해봤지만 켄마의 신발장이 확실했다. 사라진 신발을 찾던 켄마의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왔다.

 

-슬리퍼랑 신발도 없이 어떻게 돌아다니려고? 그냥 양호실로 돌아오지? [배구]

 

또 이 새끼 짓이었다.

 

-안가. 미친 새끼야.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갔다. 본관과 별관을 잇는 다리 밑에 놓인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 종이 치기만을 기다렸다. 바로 가방을 가지고 집에 갈 생각이었다. 슬리퍼는 학교 앞 편의점에서 사서 신으면 되니까 신발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반으로 들어가 가방을 챙겨 밑으로 내려갔다. 교복이 양호실에 있다는 게 떠올랐지만 그 미친 새끼가 양호실에 있을 거란 걸 생각하니 교복 따위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었다. 교복은 다시 사면 된다.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다가 계단 밑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 분주하게 움직이던 발을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사나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무 사이 아니야.”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내가 어제 오빠 너랑 3학년 코즈메랑 함께 있는 걸 봤는데?”

 

추궁하듯 묻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졌고 켄마가 아닌 코즈메라는 단어가 여자의 입에서 토해내지자 머리가 하얘졌다. 또다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냥.... 선조 귀환 이래잖아. 어떤지 궁금해서 잠깐 만난 거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냥 호기심으로 그렇게 코즈메한테 잘해주는 거라고? 오빠 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남의 입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서 네 입으로 처넣는걸 내가 봤는데 그게 호기심이라고?”

 

그래. 호기심하고 동정이야. 불쌍하잖아. 지금부터 그러는 거.”

 

그러는 게 뭐지, 몸파는 거? 아 그렇게 불쌍했나? 커서 파나 지금 파나 그게 그건데 지금부터 팔면 안 되나?

 

아무리 궁금하고 불쌍해도 코즈메는 안돼. 걔 초등학교 때부터 몸 팔고 다녔대. 원조교제하다가 고등학교 오니까 학부모한테도 몸 팔고, 학생들한테도 몸 팔고, 이제는 스포츠부에서 코즈메를 사서 집단으로 섹스도 한다니까? 마약도 한다던데? 돈만 주면 여자한테든, 남자한테든, 어른이든, 아이든, 몸 파는 게 코즈메야! 그렇게 몸 막 굴리는데 잘못해서 오빠한테 성병이라도 옮으면 어떡해? 아빠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래? 다시는 만나지도 말고 엮이지도 마. 그런다고 오빠한테 좋은 건 하나도 없어!”

 

초등학교부터 몸을 팔지는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판 거지...마약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리고 성병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 할 때 콘돔은 꼭 끼거든.

 

하아....알고 있어. 다시는 만날 일 없어. 이만 가자.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하겠다. 책 안 가져왔다며 빨리 가서 빌려야 되는 거 아니야?”

 

아씨!! 깜빡했다.”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목소리는 멀어졌고 켄마의 정신도 아득해졌다. 지금 들은 목소리는 분명 쿠로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쿠로는 언제부터 자기가 그 소문의 코즈메라는 건 알게 된 걸까? 처음부터? 그랬다면 왜 모르는 척을 했을까? 아까 들었듯이 호기심? 동정? 지금까지 보여준 친절이 다 동정, 호기심 때문이었단 걸 믿고 싶지 않다.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 자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떠들어 대는 걸까? 무슨 악의를 가졌길래? 한 번이라도 대화를 해본 사람인가? 나와 이야기도 나눠보지 않고, 나와 아는 사이조차 아닌데 그 여자는 무슨 권리로, 무슨 자신감으로 나에 대해 지껄이는 걸까? 나조차도 모르는 나를 그렇게 잘 아는 듯한 목소리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몸을 파는 걸 보기나 했나? 중학교 때 처음 상경했는데 그럼 시골에서부터 날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얇은 입술을 놀리는 그런 부류인가?

 

그리고. 그 여자의 말에 쿠로는 왜 긍정을 하는 걸까?

 

여자의 금속같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다. 귓가를 타고 들어오는 목소리는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심장이 멈추고 뇌도 생각하기를 멈췄다. 척박한 땅에 간신히 피어나던 새싹이 끊어지고 뿌리까지 썩어 문드러진다. 잠깐의 희망과 기대를 비웃듯 그렇게 썩어들어간다.

 

짧게 찾아온 희망과 행복은 너무나도 빨리 사라졌다. 적선하듯 베푼 동정심에 착각해 웃는 자신을 보며 쿠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입안에서 혀를 굴리듯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왔던 나를 보며 너는 어떤 얼굴로 나를 비웃었을까. 어떤 이중적인 얼굴을 가지고 나를 대했던 걸까. 학교에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날 보며 너는 얼마나 웃었을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머릿속은 터질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찾아가 패악질을 하고 싶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는 세 치 혀를 뽑고 싶었고, 나를 비웃었을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좋아했던 과거의 나를 죽이고 싶었다. 기대하고 좋아했던 마음이 컸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졸업하고 몸 파는 일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졌었다. 그리고 떳떳하게 자신을 밝히고 쿠로 앞에 서고 싶었다. 그래서 몸파는 걸 그만뒀다. 안 하던 공부도 시작했다. 너무 오랫동안 놔버려서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중학교 과정부터 차근차근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따라갔다. 힘들고 벅차도 참았다. 조금이나마 그 앞에서 당당해지기 위해서 떳떳해지기 위해서. 근데, 노력했던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깊은 구멍 속으로 내려왔던 줄은 잡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끊어졌다. 그리고 줄을 내린 너는 그 위에서 나를 조롱하며 웃고 있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듣기 싫은 목소리.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자신이 끔찍해 눈물이 다 났다.

 

-? 생각이 달라졌나?

 

저 손을 잡으면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못 들은 척 쿠로 옆에 붙어있을 수도 없고, 짧았던 두 달여 간의 시간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아스라이 스러지게 된다. 부정한 것을 토해내듯 입술을 뗐다. 미련이 남은 건지 생각처럼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답을 재촉하는 상대에 의해 쓸데없는 미련을 버리고 나를 수렁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리고 문을 닫고 다시는 열 수없게 두문을 걸어 잠근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래. 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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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오랜만에 온거같아요. 거의 몇주인가? 글은 써뒀는데 천성이 게으른지라 올리는데 오래 걸렸네요.  그리고 너무 주제가 어두운거만 쓰는거같은데 전 이런게 취향이라 벗어날수 없을거같아요ㅋㅋㅋㅋ 핸드폰에는 더 어둡고 더 더러운 이야기가 메모되어 있는데 그건 나중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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