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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버스 :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흑백으로만 보이다가, 만난 후에 색깔이 보이는 세계.

여기에 제가 추가한 건, 소울메이트를 만나지 못하면 시력을 잃게 된다는 컨셉만 추가했습니다!!

 

[세계의 마지막 순간. 쿠로켄ts]

 쿠로켄 전력 60분 -주제-마지막

작가님. 그럼 이렇게 진행하는 걸로 해도 괜찮을까요?

 

출판사 직원은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고, 어딘가 들뜬 보였다. 4년을 봐왔지만 그녀의 자세한 이목구비조차 모른다. 어렴풋이 이렇게 생겼으리라 추측할 . 오늘따라 들떠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에 덩달아 자신의 기분도 들떴다.

 

오늘 데이트 있어요? 작년에 만난 사람?

 

그녀의 작은 같은 웃음소리 귓가로 파고들어 감미로운 음악처럼 느껴진다. 커피를 내리려는지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리고, 향긋한 커피향이 작은 공간을 메꾼다. 점점 가까워지는 커피향으로 그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는 느껴졌다. 손가락에 따뜻한 손이 느껴졌고, 머그컵 손잡이가 쥐어졌다. 그녀의 도움으로 손을 더듬어 머그컵을 감싸고, 조심히 데워진 잔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흐릿한 세상에서는 모든 일이 조심스러웠다. 교정용 안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앞은 불투명한 회색 막을 가져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고, 회색과 검정, 흰색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계는 단조로운 무채색이었다.

 

어제 청혼 받았어요. 결혼하재요. 언제 프러포즈  하나 했는데 어제서야 받은 있죠?

 

퉁명스럽게 말하는 목소리에도 애정이 담겨있었다. 목소리로 전해지는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향긋하면서도 씁쓸한 커피향과,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녀는 하나의 연주와도 같았다. 조화로운 연주 속에서 찾아볼 있는 유일한 부조화는 나다. 진심으로 그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지 못한다. 오랫동안 봐온 동생 같은 그녀의 결혼 소식이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참담해지고 질투가 나는 아마 어제 병원에서 들은 시한부 선고 때문이겠지.

 

 

.

 

 

? 제가 잘못 들은 같은데요?

 

하아.. 의사는 제대로 쓰고 있는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쓴다. 손으로 앞에 놓인 진료차트를 끄적이며 눈을 내리깐다. 모든 추측일 눈으로 인지할 있는 아무것도 없다. 희부연한 시야로는 의사의 시선도, 얼굴도, 진료 차트에 쓰인 말도, 눈의 상태도 없다. 그저 의사가 입을 떼고 소견을 말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이런 말씀을 드리게 유감이지만.... 빠르면 일주일, 느려도 10 이내에 시신경이 닫힐 겁니다.

 

...?

 

예상치도 못한 의사의 소견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멍청한 소리를 밖으로 내뱉었다. 아직도 이해가 덜된 의사의 말을 곱씹는다. 시신경이 닫힌다. 시력이 퇴화된다는 걸까? 아니면...

 

아예 맹인이 된다는 겁니다.

 

의사의 간결하고 무의미적인 말은 둔기가 되어 머리를 울린다. 종을 울리듯 말은 나의 머리를 때렸고, 종처럼 나의 머리는 흔들렸다. 맹인이 된다. 회색으로만 보이던 지겨운 세상과는 안녕이다. 항상 바라왔던 작별인데.. 눈물이 날까? 아마 이런 작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영화 속에서의 병은 운명적 사랑으로 그려진다. 철저히 미화되고, 이면의 아픔은 배제된다. 소울메이트를 만나 세상의 빛과 시력을 얻어, 행복하게 모든 영화의 엔딩은 해피였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인생은 해피엔딩이 없었다.

 

이번에 출판되는 작품은 아마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작품이 거다. 기자들은 자살 소식을 듣고 개떼처럼 몰려들어 그녀에게 마이크를 건네겠지.

 

인기 작가 쿠로오 테츠로씨는 자살을 택한 겁니까?

 

이런 시답잖은 질문을 던지겠지. 생각에 그녀는 그런 멍청한 기자들을 내쫓고, 사진앞에 국화 송이를 놓아주며 비통해할 것이다. 다른 출판사 직원들과 함께.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없지만 옛사랑이자 첫사랑인 그녀가 울어주는 장례식은 나쁘지 않을 같다.

 

열어둔 창문을 통해 시원하기보다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들어와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도망간다. 차가운 공기 덕분에 숨쉬기가 편해졌다. 어제 내린 눈으로 인해 교통이 꽤나 혼잡한 듯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이 건물 앞을 지나가는지 꺄르르 거리는 여러 개의 웃음소리, 옆 건물 화장품가게에서 들려오는 캐럴까지 다채로운 소리가 한데 섞여 귓가에 들려온다.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님. 작가님, 작가님! 피곤하세요? 나머지는 다음에 뵐 때 설명드릴까요?”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전혀 다채롭지 않은 검은색과 흰색 단 두 가지 색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오로지 흑백의 밝기로만 표현된 그녀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니요.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 오늘부터 여행을 떠나보려고 해요. 요새 너무 일만 했더니 피곤해서 친구들하고 가볍게 해외로 나가보려고요. 연락이 안 돼도 걱정하지 말고, 제가 미리 얘기한 대로 진행해주세요.”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올려 그녀에게 건넬 수 있는 마지막 미소를 건넸다. 무채색의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녀도 몸을 일으켜 나를 따라 건물 밖까지 나와 인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회색빛 하늘을 쳐다봤다. 짙은 회색 하늘 속 얕은 회색 테두리에 감싸인 구름이 희부연한 하늘 위를 떠다니는 평소와는 다를 바 없는 익숙한 풍경이 왠지 모르게 우울해 고개를 땅을 향해 처박고 길을 걸었다.

 

탁탁 부딪혀 오는 지팡이의 소리가 거슬렸지만, 이게 없으면 길을 걷기 힘들다. 아직 완전히 시력을 잃은 건 아닌지라 산책 정도는 가능했지만 사람이 많고, 계단과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이 깔린 도시는 지팡이 없이 혼자 걷기에는 위험했다. 무엇보다도 지팡이로 길을 더듬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피해 돌아간다. 그럼 사람들과 부딪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구는 일은 피할 수 있다.

 

이 많은 인파들이 있어도 지팡이 뒤 검은색 구두에 걸리는 건 회색의 얼룩이 나있는 눈뿐이었다. 눈길을 걷다가 간혹 나오는 보도블록은 도대체 무슨 색일까? 빨간색? 검은색? 초록색? 흰색? 노란색? 색이란 건 어떤 것일까? 흰색과 검은색을 구별하는 건 쉽다. 밝은 건 흰색. 어두운 건 검은색. 그 둘의 중간, 내 세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색은 회색..

 

어릴 때 읽은 책에서 노란색은 병아리, 개나리와 같은 색이라고 했다. 초록색은 나뭇잎과 같은 색, 하늘색은 하늘과 색이 같다고 해서 하늘색이라고 쓰여있었다. 나한테 병아리와 개나리는 회색이었고, 나뭇잎은 짙은 회색, 하늘은 옅은 회색이었다. 내게 있어 노란색과 초록색, 하늘색은 명도만 다를 뿐 다 똑같은 회색이었다.

 

입김으로 인해 뿌옇게 흐려진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서 안경 닦이를 찾았다. 안경을 벗자 시야가 완전히 흐려졌다. 카메라에 블러 처리를 한 듯 밝음과 흐림, 가까운 사물의 형태만 보이는 눈은 이미 상태가 안 좋아진 지 오래였다. 두꺼운 안경을 쓰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눈은 나빠졌다. 나이는 벌써 30살이 넘어가고 있는데 소울메이트는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앞으로 5. 남은 눈의 수명이었다. 아니,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끊었으니 더 앞당겨질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 가면 소울메이트가 나타난다 한들 색은커녕 앞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소울메이트는 어디에 있는 건지 35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다.

 

상관없다. 나타나지 않아도. 오늘 나는 바로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어 죽을 예정이다. 운전자에게는 미안했지만 지금의 나는 나 이외의 누군가를 걱정하기에는 여유가 없다. 원래 목을 메 자살하려고 했지만, 언제 사람들이 날 발견할지 모른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외로웠지만 죽을 때까지도 외롭기는 싫었다. 글을 써서 먹고사는 작가가 눈이 안 보인다면... 비참하다. 혼자 생활하지도 못하게 될 거고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데 죽어도 싫다. 차라리 죽는 게 최악의 엔딩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닦인 안경을 고쳐 쓰고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손목을 덮은 옷을 살짝 걷어냈다. 점자로 표시된 시간은 벌써 10시를 향해 달려간다. 저녁식사를 하고 그녀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소설의 영화화와 신작 출판을 위해 만난 그녀는 전화로도 만나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하지만 즐겁다.

 

걸을수록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다행히도 먼저 온 여자가 핸드폰을 보며 신호등 옆에 서있었다. 신호등의 초록색 빨간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는 옆에 사람이 있지 않으면 길을 건너지 못 했다. 어릴 때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냥 건너서 죽을뻔하기도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같이 건너는 사람을 따라 건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한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신호등을 한번 쳐다보고는 끼고 있던 이어폰을 뺐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발을 뗐다. 나도 여자를 따라서 횡단보도를 향해 발을 내밀었다. 그 순간 고막을 찢을 듯이 큰 경적소리가 났고 밝은 불빛이 나를 비췄다. 고개를 돌리자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화물차를 발견했고 미쳐 피할 수 없었다. 죽으려고 했지만 정말 죽으려니까 이렇게 죽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눈을 감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끝은 내가 직접 낼 거라고 결심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차에 치여 죽는 끝이라니... 원하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무채색이더라도 뚜렷하지는 않더라도 앞을 볼 수 있을 때 죽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듯 차가운 알갱이가 얼굴 위로 떨어졌다. 죽음을 기다리는 나를 누군가가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겼고 힘없이 서있던 나는 그대로 그 손에 의해 끌려갔다.

 

차에 치인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엉덩이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끌어당겨진 순간 넘어진 건지 엉덩이에는 차가운 한기와 아픔이 느껴졌다. 죽음은 이렇게 미뤄졌다. 누가 나를 잡아당긴 건지 보기 위해 눈을 떴지만 넘어지면서 안경이 벗겨진 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만 넘어진 건 아닌 건지 내 뒤에도 한 여자 넘어져 눈 속에 파묻혀있다. 잡아당기면서 반동으로 눈 속에 들어가게 된 건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눈 위로 널브러져있었다.

 

구해줬는데 내버려 두는 건 예의가 아닌듯해 여자의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여자의 상체를 일으켰다. 학생인 듯 교복을 입고 있었고 코트 위에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정신이 드는지 잡고 있는 여자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여자가 눈을 떠 나를 올려보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여자를 중심으로 세상이 다채롭게 물들었다.

 

검은색 물감을 물 위에 한 방울 떨어트리면 물감이 물에 퍼져나가듯 여자를 중심으로 세상이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나는 처음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았고 나무의 색이 무슨 색인지 알 수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가득 차있는 세상이 내 눈에 들어왔고 안경을 끼지 않았지만 저 멀리에 쓰여있는 간판의 상호를 읽을 수 있었다.

 

내 앞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여자의 머리색도 알 수 있었고 여자의 목도리의 색도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교복에 들어간 무늬도 넥타이의 색과 목도리의 색이 같고 그 둘의 색이 내가 입은 니트의 색과 같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여자의 머리가 염색을 한 거란 것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뿌리 부분이 약간 자라나 두 개의 색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자의 머리색과 눈 색이 같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고등학생들의 명찰에 색이 들어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모든 게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시력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색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감격과 감사로 인해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다. 눈물이 눈에 떨어지자 흰 눈이 약간 젖어 들어갔다.

 

이제라도 나타나준 소울메이트의 이름을 확인했다. 코즈메 켄마.

 

내가 살고 있던 무채색의 세계를 허물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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